책소개
한국 대표 시인의 육필시집은 시인이 손으로 직접 써서 만든 시집이다. 자신의 시 중에서 가장 애착이 가는 시들을 골랐다. 시인들은 육필시집을 출간하는 소회도 책머리에 육필로 적었다. 육필시집을 자신의 분신처럼 생각하는 시인의 마음을 읽을 수 있다.
육필시집은 생활에서 점점 멀어져 가고 있는 시를 다시 생활 속으로 끌어들이기 위해 기획했다. 시를 어렵고 고상하기만 한 것이 아니라 생활 속에서 쉽고 친근하게 접할 수 있는 것으로 느끼게 함으로써 새로운 시의 시대를 열고자 한다.
시집은 시인의 육필 이외에는 그 어떤 장식도 없다. 틀리게 쓴 글씨를 고친 흔적도 그대로 두었다. 간혹 알아보기 힘든 글자들이 있기에 맞은편 페이지에 활자를 함께 넣었다.
이 세상에서 소풍을 끝내고 돌아간 고 김춘수, 김영태, 정공채, 박명용, 이성부 시인의 유필을 만날 수 있다. 살아생전 시인의 얼굴을 마주 대하는 듯한 감동을 느낄 수 있다.
200자평
1985년 등단한 후 꾸준한 작품 활동을 해 온 정일근 시인의 육필 시집.
표제시 <사과야 미안하다>를 비롯한 60편의 시를 시인이 직접 가려 뽑고
정성껏 손으로 써서 실었다.
지은이
정일근
1958/ 경남 진해 출생
경남대학교 사범대학 국어교육과 졸업
1984/ ≪실천문학≫(5권) 신인 작품 발표
1985/ ≪한국일보≫ 신춘문예 시 당선
2001/ 중학교 1학년 2학기 국어교과서 시 <바다가 보이는 교실> 수록, 시와시학상 젊은시인상 수상
2003/ 소월시문학상 수상
2006/ 영랑문학상 수상
2008/ 포항동해국제문학상 수상
2009/ 지훈상(문학 부문) 수상
2010/ 이육사시문학상 수상
현재 경남대학교 교수.
시집
≪바다가 보이는 교실≫(1987, 창작과비평사)
≪유배지에서 보내는 정약용의 편지≫(1991, 빛남)
≪그리운 곳으로 돌아보라≫(1993, 푸른숲)
≪처용의 도시≫(1994, 고려원)
≪경주남산≫(1998, 문학동네)
≪누구도 마침표를 찍지 못한다≫(2001, 시와시학)
≪마당으로 출근하는 시인≫(2003, 문학사상)
≪오른손잡이의 슬픔≫(2005, 고요아침)
≪착하게 낡은 것의 영혼≫(2006, 시학)
≪기다린다는 것에 대하여≫(2009, 문학과지성사)
차례
7 시인의 말
8 시인(詩人)
10 야학 일기·1
14 유배지에서 보내는 정약용의 편지
20 바다가 보이는 교실
22 북
24 그리운 그 나라
26 고등어
30 새벽
32 옛집 진해
36 거리(距離)
38 여름 편지
40 빨래
42 겨울나무
44 아버지, 내 소리 저편의 세상에 살고 계신
46 파일 연등
50 봄이 오는 소리
52 그리운 저녁
54 감은사지·1
56 감은사지·7
60 강촌에 살자
62 그리운 곳으로 돌아보라
66 소금을 끓이다
68 울산의 봄
70 깨끗한 슬픔
72 별에게 길을 물어
76 종
78 이런 밤
80 가을 억새
82 비
84 목련
86 길
88 한로(寒露) 지나며
94 적(寂)
96 황옥(黃玉)의 사랑가
100 침묵
102 겨울 새벽
104 가덕 대구
108 우루무치에서의 사랑
112 뜨거움
114 다운동 고분군에서
118 옛날 자장
120 부석사 무량수
124 나에게 사랑이란
128 마당으로 출근하는 시인
132 은현리 가을에
134 저녁
136 가을의 일
140 날아오르는 산
146 어머니의 그륵
150 둥근, 어머니의 두레 밥상
154 사과야 미안하다
158 흑백 다방
164 오른손잡이의 슬픔
168 죽비
172 아침 부처
174 책
178 나무 기도
182 울란바토르행 버스를 기다리며
186 다시, 학동
190 쌀
193 시인 연보
책속으로
사과야 미안하다
사과 과수원을 하는 착한 친구가 있다. 사과꽃 속에서 사과가 나오고 사과 속에서 더운 밥 나온다며, 나무야 고맙다 사과나무야 고맙다, 사과나무 그루 그루마다 꼬박꼬박 절하며 과수원을 돌던 그 친구를 본 적이 있다. 사과꽃이 새치름하게 눈 뜨던 저녁이었다. 그날 나는 천년에 한 번씩만 사람에게 핀다는 하늘의 사과꽃 향기를 맡았다.
눈 내리는 밤에 친구는 사과를 깎는다. 툭, 칼등으로 쳐서 사과를 혼절시킨 뒤 그 뒤에 친구는 사과를 깎는다. 붉은 사과에 차가운 칼날이 닿기 전에 영혼을 울리는 저 따뜻한 생명의 만트라. 사과야 미안 마지막 눈 소리나 들으며 사과야 미안하다 사과야 미안하다. 친구가 제 살과 같은 사과를 조심조심 깎는 정갈한 밤, 하늘에 사과꽃 같은 눈꽃이 피고 온 세상에 사과 향기 가득하다.